20151012()

 

5:1-14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에스더의 담대한 처신 (1-2)

에스더는 왕을 만나기 위해 생명을 거는 결단을 하고 어전에 나아갔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갔기에 왕의 반응에 따라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상황에 개입하셨습니다. 왕이 에스더를 보는 순간 그녀가 매우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왕은 손에 잡고 있던 금규를 즉시 에스더에게 내밀었습니다. 이제 에스더는 민족을 구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죽으면 즉으리라는 그녀의 결단은 죽음을 뛰어넘는 은총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에스더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을 경험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구하는 것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인지, 아니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인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확실하다면 그것을 위해 에스더처럼 목숨을 거십시오. 지금도 주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담대한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에스더의 신중한 처신(3-8)

생명을 걸고 자신에게 찾아온 에스더를 본 왕은 그녀에게 절박한 사연이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이로써 에스더의 소원이 왕에게 전달되어 유대인들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따라 왕과 하만을 거듭 잔치에 초대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만은 처형되고 유다 민족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길이 열리는 것 같다고 해서 무작정 그 길로 뛰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완전히 알 때까지 신중해야 합니다. 절대 주님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면서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지혜롭게 인내하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만의 교만한 처신(9-14)

왕과 함께 왕후가 베푼 잔치에 초대된 하만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굽혀 절하기는커녕 일어나지도 않는 모르드개를 보고서 분노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측근들을 불러 모르드개를 향한 증오를 쏟아놓자, 그들은 끔찍한 처형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그를 죽일 높은 교수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만은 거기에 모르드개를 달아 분노를 풀고 기쁜 마음으로 잔치에 참석하겠다는 잔인한 흉계를 계획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한 대적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이 필요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만은 매우 강합니다. 동시에 악합니다. 하지만 하만이 아무리 강하고 악해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이루려 할 때 악한 세력은 우리를 핍박하며 방해합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주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만 앞에서 굽히기는커녕 일어나지도 않은 모르드개처럼 당당하십시오. 그런 자들을 통해 주님의뜻은 이루어집니다.

 

(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이것은 기적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부르지 않은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름 받지도 않고 왕에게 나아가 무례를 범하는 것은 페르시아 법에 따르면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황을 보건대 구원을 입을 가능성이 희박한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니 왕이 에스더를 보는 순간 품게 된 이 애정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에스더가 요청한 3일간의 전 민족적 금식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에스더서는 구역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또는 여호와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성경에서 가장 신앙과 상관없이 유대 민족의 애족 정신만 고취한 글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반전의 은혜가 더욱 빛납니다. 성도가 사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