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4()

 

귀환한 백성들의 헌신

 

2:43-70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사람들(43-58)

이스라엘로 귀환한 사람 중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느디님 사람은 성전에서 허드렛일을 도왔던 것으로 보이며,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왕궁에서 봉사하는 일을 했습니다. 성전을 재건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들도 성전 건축에 참여하기 위해 귀환에 동참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자손은 아니지만 자신을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유다 땅으로 돌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는 신분, 가문, 성공,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광스러운 구원의 행력에 참여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라고 해서 무시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선조를 밝힐 수 없는 사람들(59-63)

귀환자 중에는 자신의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했는지 밝힐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계보에서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가계와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것으로 재산이나 땅의 소유자를 찾았으며, 제사장의 경우에는 거룩한 직무를 맡는 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신분을 입증하기 위해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고 거듭난 성도임을 정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자신에게 있어야 합니다. 새 생명에 합당한 생명 현상이 있는 사람만이 성도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더라도 거듭난 자의 열매가 삶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제라도 참된 믿음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구원받았다고 단순히 되새기는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변화된 존재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분명한 증거를 통해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 성도다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물을 기쁘게 드린 족장들(64-70)

족장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 예물을 드립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을 두실 곳으로, 이스라엘은 오직 그곳에서만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재건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온 힘을 다해 기쁨으로 성전 재건에 참여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감사와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주님이 생명을 다해 우리를 섬겨 주셨듯이 우리 또한 온 힘을 다해 하나님과 형제를 섬겨야 합니다. 이는 공동체에 더 큰 감사와 기쁨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해 살았으나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며 그로부터 오는 풍성함을 누립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자발적인 헌신으로 활력이 넘칩니다.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당시 그들의 힘겨운 헌신이 담긴 본문을 우리는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후 어느덧 3세대가 지나갔습니다. 히브리어는 이미 구어로서의 기능을 잃고 사어가 되었으며, 주 언어는 아람어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에게 이제는 오히려 바벨론이 고향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실제로 그곳에 남아 훗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예루살렘에는 그 먼 길을 돌아온 사람들을 보호할 울타리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정착금을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전 재건을 위해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소위 오늘날 꿈의 이민을 떠난 사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정착을 합니다. 당시 귀환자들 또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는 신앙의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