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7()


성전 재건 공사의 중단

 

4:11-24

 

이스라엘을 모함하는 대적들(11-16)

바사의 관리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 내용은 왕의 포로로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자들이 예루살렘 성을 완공하고 나면 아무런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왕에게 손해만 입히고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성은 예전부터 반역을 일삼던 곳이라고 모함합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이 회복되면 왕이 누리던 것에 피해가 갈 것이라고 하며 성벽 공사를 막기 위해 온갖 애를 씁니다.

세상은 교회가 거룩함을 드러낼수록 자신이 손해를 입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좇아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방해거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분을 섬기지 않고 개인의 유익을 좇아 살아갈 때 징계하시며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 나라는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여겨 막으려고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회가 될 수 있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교회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때 세상의 중상모략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이상히 여기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의 모함에 동조하는 왕(17-22)

상소문을 읽은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의 설득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자신에게 닥칠 손해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전에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왕들을 생각할 때 성을 재건한 후 이스라엘이 다시 강성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즉시 공사를 중단시키라는 회신을 보냈습니다.

세상은 교회가 그들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배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에 속한 죄의 영역이 빛에 의해 드러날수록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그냥 돌이키면 살 수 있는데 완악함을 버리지 않고 저항합니다. 유다 백성의 대적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편지를 써서 이스라엘의 성전 공사를 중단시키도록 모함했습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는 일인데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반대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방식으로 대처합니다.

 

대적들에 의해 중단된 성전 공사(23-24)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바사의 관리에게 전달되자 그들은 그것을 읽고 재빨리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왕의 명령대로 공사를 중단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도착해서 권력과 무력으로 유다 사람의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들이 가진 힘으로 누른 것입니다. 6-23절은 성벽 공사를 방해한 시기의 일이고, 24절은 성전 공사를 방해한 시기의 일입니다. 그 시기와 내용은 다르지만, 저자는 동일한 대적들의 방해여서 의도적으로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은 힘으로 누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권세와 무력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의 자리가 확고히 선다고 행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보십시오. 기회가 왔다고 생각되자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권력으로 압제하며 유다 사람들의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며 자축했을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이 있으셔서 한때 성전 공사가 중단되는 것을 혀용하셨으나, 훗날 공사는 완성됩니다. 우리 역시 때로 대적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신 하나님을 따라 세상을 품어야 합니다.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공사가 지체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귀환자들의 열정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일까?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사마리아 사람들의 제의를 거절한 것이 한편만으로는 옳은 일이었지만, 다르게 본다면 그로 인해 후대의 독선과 분리주의의 싹을 틔웠음이 느껴집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접근했다가 훼방꾼으로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귀환한 유다인들의 소위 순혈주의라는 교만이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배타성이 이어져 예수님의 포용적 은혜의 복음과 대립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독선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